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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기록

보성 여행, 제암산자연휴양림과 초암정원

by 도토리초록별 2020. 2. 25.

전남 보성으로 떠난 여행에서 동화 속 눈꽃 세상을 만났습니다.

10년 만에 하얀 눈을 뒤집어쓴 제암산자연휴양림과 초암정원에서 색다른 여행을 경험했습니다.

 

 

1월 초에 일찌감치 벌교 보성 일대로 회원들과 여행을 잡아 놓고 준비하는데 갑자기 중국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사태가 터졌다. 국내에도 확진자가 발생했다. 중국을 다녀오는 사람들을 격리한다 검역한다 난리가 났다. 여행을 앞둔 우리들의 마음도 뒤숭숭하기만 하다. 여행을 못 가겠다고 취소하는 사람도 나왔다. 그러나 아직은 확진자가 손에 꼽을 정도로 적고, 우리가 방문하는 보성 벌교 일대는 확진자도 없고 인구도 적은 청정지역이라 예정대로 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대신 아픈 분들은 참여를 자제하고 마스크와 손세정제 등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그런데 이건 또 왠일이람. 여행을 떠나기 하루 전부터 눈이 내린다. 겨우내 내리지 않던 눈이 갑자기 온다. 펑펑 많이도 온다. 출발하는 날 아침까지 그치지 않는다. 오랜만에 만난 눈이 소담스럽고 예뻤지만 장거리 버스 여행을 앞둔 터라 난감하기 그지없다. 사람들에게 보성은 괜찮을 거라 말하면서도 마음 한편이 묵직하다. 걱정과 불안을 안은 채 드디어 우릴 태운 버스가 출발한다.

 

 

버스로 이동하는 동안 눈은 그쳤다 내렸다를 반복했다. 쏟아지는 눈의 양도 대단하다.  바닥조차 젖지 않은 도로를 지날 때는 우리나라가 이렇게 넓었나 싶었다. 지리산을 지날 때는 흰 눈이 덮인 우람한 산줄기에 탄성이 절로 난다. 시시각각 변하는 창밖 풍경에 눈을 떼지 못하다 보니 어느새 걱정은 사라진다.  점점 새로운 여행지와 날씨를 즐기는 여행자의 모드로 바뀌고 있었다.   

 

 

보성에 도착해 우선 점심부터 먹는다.  보성은 녹차 산지로 유명하다. 녹차를 넣어 만든 녹차떡갈비로 배를 든든히 채우고  첫 번째로 방문한 곳은 제암산자연휴양림이다. 우리가 갔을 때는 눈보라가 절정으로 그야말로 눈 천지가 따로 없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바람이 휘몰아친다. 예정했던 더늠길 대신 그나마 안전하다고 휴양림사무소 직원이 추천해 준 호숫길로 들어선다. 미끄러질까 조심조심하며 호숫가 데크길을 걷는다. 아무도 밟지 않은 하얗게 쌓인 눈 위에 발자국을 찍어본다.  뽀드득뽀드득 소리가 경쾌하다. 눈보라 날리는 산세와 어우러진 호수 풍경은 아련하다.

 

 

온통 하얀 눈뿐인 세상에서 몇몇이 눈을 뭉쳐서 던지기 시작한다. 어린이들처럼 눈싸움이 시작됐다. 눈을 피하고 던지는 사람들의 표정에 점점 웃음이 피어난다. 눈빛이 초롱초롱 빛난다. 눈길을 걷는 사람들의 입에서 콧노래가 흘러나온다. 흰 눈이 선물하는 동심의 세계는 어른 아이 구분이 없다. 미끄러운 눈길과 추위가 불편하기도 하지만 또한 덕분에 마음이 말랑말랑 행복해졌다. 어린아이처럼 웃게 만드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아 이 맛에 여행을 떠나지, 여행은 이렇게 우리의 마음을 채워준다. 

 

 

다음 코스로 찾은 곳은 초암정원이다. 흰 눈이 연출해 낸 동화 속 세상이었다. 겨울에도 초록빛을 잃지 않는 갖가지 난대성 수종들이 가득 차 있는 정원에 붉은 산다화가 끝물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매화와 산수유가 피어나며 봄을 알리고 있었다. 아름다운 나무와 꽃들이 하얀 눈꽃 모자를 소복하게 쓰고 있는 모습은 정답고 아기자기했다. 

 

 

놀라운 것은 이곳 보성에 이렇게 눈이 많이 내린 것은 근 10년 만이란다. 아 이제야 오전에 보성군청 담당자와 나눈 통화내용이 이해되었다. 초암정원을 방문하러 간다며 연락처를 묻는 내게 대뜸 보성에 눈이 많이 오는데 왜 거길 가냐고 했다.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눈이 온다며 거듭 만류하던 그의 말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오랜만에 내린 폭설에 이곳 주민들도 놀랐던 것이리라. 하지만 이렇게 예기치 않은 일이 가져다주는 반전이 있다. 우린 10년 만에 내린 눈 덕분에 신비롭고 아름다운  동화 속 초암정원을 만났으니 말이다. 이번 겨울 정말 멋진 눈꽃 풍경을 제대로 감상했다.

 

 

초암정원은 김재기 씨가 어머니와 가족들을 생각하며 수 십 년 동안 가꾼 개인정원으로 전라남도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아 민간정원 3호로 지정된 곳이다. 겨울에도 푸른 난대성 나무들과 대숲, 편백나무숲이 자리를 빛내고 있다. 우리가 간 날에는 흰 눈을 맞은 붉은 산다화가 처연하고, 봄을 알리는 매화와 꽃봉오리가 제법 도톰해진 노란 산수유가 봄을 알리고 있었다.

 

보성 초암정원 (2020.2.17)

 

눈 쌓인 산길을 지나 정원의 가장 높은 공간인 초암정에 올랐을 때 갑자기 눈이 그치고 파란 하늘이 드러나 우릴 놀라게 한다. 눈 날리던 회색빛 하늘이 파랗게 밝아오면서 저 멀리 득량만이 한눈에 들어왔다. 모두 신비감에 휩싸이며 선물을 받는 느낌이 들었다. 여행의 오묘한 맛에 놀라워했다. 코로나와 눈보라를 극복하고 온 여행자가 받은 예상치 못한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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