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의 기록

코로나와 풍랑을 넘어서, 보성 장도

by 도토리초록별 2020. 2. 27.

아슬아슬하게 풍랑주의보를 피해 꼬막 섬, 장도를 다녀왔습니다.

 

 

갯벌섬 장도를 무사히 입도할 수 있을까. 당일 아침까지 마음을 졸였다. 장도가 있는 여자만 일대는 3일 전부터 풍랑주의보가 내려진 상태기 때문이다. 먼 섬은 아니지만 예보가 바뀌지 않으면 배는 뜨지 않는다. 아침 일찍 섬에 갈 준비를 마치고 호텔 앞 국밥집에서 순댓국과 콩나물국밥을 먹다가 해경 벌교 출장소에 연락해 본다. 새벽에 풍랑이 해제되었단다. 우리 일행은 환호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상진선착장으로 이동한다.

 

 

장도는 벌교 꼬막의 70%가 나는 꼬막섬이다. 일대가 다 갯벌로 국가가 보호하는 갯벌도립공원으로 지정돼 있다. 벌교에서 장도를 오가는 여객선도 갯벌이 발달한 지형 때문에 물때에 따라 배가 운행하는 시간이 매일 바뀐다. 그래서 장도에 갈 때는 여객선 운항시간을 미리 확인해야 한다. 장도는 뻘에서 꼬막을 채취할 때 유용한 도구인 뻘배를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곳이라니 더욱 관심이 간다. 이번 여행에 뻘배를 볼 수 있을까 장도는 어떤 곳일까.

 

 

풍랑은 해제되었다지만 바닷바람이 만만치 않다. 추위를 피해 모두 객실로 모여든다. 작은 객실 안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습이 피난민이 따로 없다. 냉기를 피해 바닥에 펴놓은 이불 2장 위에 모여앉아 있는 모습을 서로 쳐다보며 킥킥 웃는다. 아니나 다를까 나이 지긋한 분들은 한국전쟁 피난 이야기를 꺼내며 옛날을 회상하기도 한다. 배에 같이 탄 장도 주민은 추운 날씨에 도시에서 여행 온 사람들이 신기한지 왜 여길 오냐며 의아해한다.

 

보성 장도 (2020.2.18)

 

장도는 고요하고 한적했다. 하늘은 파랗고 풍랑이 몰아낸 공기는 맑고 상쾌하다. 코로나와 미세먼지로 위협받던 우리가 얼마 만에 호흡하는 청정한 공기인가. 심호흡을 하며 신경선착장부터 해안선을 따라 걷는다. 이름도 예쁜 꼬막길 코스다. 잔잔한 바다와 파란 하늘을 눈에 담으며 걷는다.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걷는 오붓한 숲길에서는 착해지는 기분까지 든다. 마른 갈대와 어우러진 넓은 뻘 바다는 평화롭고 고즈넉하다. 널찍한 암반 위에 큰 바윗돌이 드문 드문 놓여있는 독특한 해안 지형, 떼를 지어 날아가는 철새들을 하염없이 쳐다보기도 한다. 차도 빌딩도 소음도 없이, 오직 우리와 섬과 자연만이 있는 고요함에 마음은 푸근하고 넉넉해진다.

 

 

길은 해안길을 지나 대촌마을로 이어진다. 가는 길은 지나는 사람 하나 없이 한적하다. 하기는 이 섬에 사는 분들이 약 50여 명 남짓인데 농한기에 풍랑 뒤끝이니 사람 구경이 쉽지는 않을만하다. 게다가 오늘 배를 타고 들어온 외지에서 온 여행자도 우리 일행이 전부였다. 섬을 전세 낸 듯 사람도 차도 없는 고요한 마을을 우리끼리 느릿느릿 걸었다. 가는 길에 보건소가 보인다. 아까 함께 배를 탄 젊은 여성이 보건교사라 했었는데... 지금 저곳에서 근무 중이겠구나. 옆으론 아담한 장도분교가 눈에 들어온다. 작년에는 학생 1명과 교사 1명이 있었다는데, 6학년 학생이 졸업한 뒤에 올해는 학생 없는 학교가 됐다고 한다. 외진 지역으로 여행하며 자주 보는 현실이지만 어린이가 줄고, 덩달아 학교가 없어지는 것은 늘 안쓰럽고 안타깝다.

 

 

다리가 묵직하도록 섬을 걷고 먹는 점심은 맛있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섬에서만 나는 굴, 꼬막, 숭어 등 해산물과 섬에서 캔 나물들로 마련된 섬 밥상이라 더욱 그랬다. 식사 후 벌교로 나가는 배를 타기 전까지 자유롭게 섬에서의 시간을 즐긴다. 

 

 

부수마을 뒤쪽의 선착장에 가본다. 뻘이 넓게 드러난 고요한 바닷가에 주인 없는 뻘배들이 눈에 띈다. 저걸 타고 저 넓은 뻘을 누비며 꼬막을 주워 담는 모습도 상상해본다. 시커먼 저 뻘밭은 보기엔 아무것도 살지 못할 것만 같은데. 꼬막과 망둥어, 돌게, 짱둥어 등 무수한 생명들이 터 잡고 살아가는 생명의 보고이다. 동시에 뻘에 기대어 살아가는 섬사람들의 생계의 터전이다. 무수한 갯 생명들과 한 가지로 자연에 깃들어 함께 살아가는 섬사람들을 떠올리며 갯벌을 다시 바라보았다.

 

 

 

하루 두 번 운항하는 여객선 시간에 맞춰 다녀온 여섯 시간가량의 짧은 장도 여행이 끝났다. 전날의 눈보라와 아슬아슬하게 풍랑을 피해서 다녀온 여행이라 더 스릴이 넘쳤다. 잠시나마 코로나 걱정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시리도록 파랗던 하늘과 잔잔하던 바다, 갯벌에 기대어 살아가는 섬사람들도 마음에 남는다.

여행의 재미는 안락하고 편안함에만 있는 건 아니다. 코로나와 눈보라, 풍랑주의보라는 예기치 못한 변수를 만나서, 그 여건을 헤쳐나가며 느끼는 성취감과 재미도 크다. 이렇게 역동적이고 드라마틱한 여행의 경험은 언제든 꺼내 보는 최고의 추억 적금이 아닐까.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