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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속으로/독일

종교개혁의 현장, 루터의 도시 비텐베르크

by 도토리초록별 2020. 4. 16.

마르틴 루터가 면죄부를 발행한 부패한 교회권력을 향해 95개조 반박문을 발표하면서 종교개혁의 깃발을 꽂은 도시 비텐베르크를 방문했습니다.

 

비텐베르크 구 시청사 광장 앞의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모형물(2016.8.27)

 

1517년 비텐베르크 대학의 교수이자 사제였던 루터는 가톨릭 교회가 면죄부를 팔아 돈을 모으고 교회 부패가 만연하자 이에 항의하며 반박문을 발표합니다. 당시에 의견을 제기하던 관행대로 일종의 게시판인 비텐베르크 대학의 성교회 정문에 95개조 반박문을 붙인 것입니다. 이는 유럽의 부패한 가톨릭 교회에 반기를 든 역사적 사건으로 이후 종교개혁의 불꽃이 활활 타오르는 계기가 됩니다.

 

비텐베르크 구 시청사 광장의 루터 동상

 

비텐베르크를 방문한 날은 8월 말로 신록이 푸른 화창한 날입니다. 본격적으로 도시 투어를 하기 전에 도시 입구에 있는 작은 공원에 들렸습니다. 키가 높은 푸른 참나무가 눈에 띕니다. 루터의 참나무로 불리는 곳입니다. 왜일까요?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게시했을 때 당시 교황인 레로 10세는 교지를 내려 주장을 철회하지 않으면 사제인 루터를 파문하겠다고 엄포를 놓습니다. 그때 루터는 굴하지 않고 바로 이 자리에서 사람들을 모아놓고 교황의 교지를 불태워버립니다. 이 역사적 현장을 기념해 심은 나무가 바로 이 루터의 참나무입니다.

 

 

비텐베르크 시내는 그리 크지 않아 가볍게 도보로 둘러보기 충분합니다.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붙인 성교회, 루터가 학생들을 가르쳤던 비텐베르크 대학, 루터가 살던 집으로 지금은 루터 박물관이 된 루터하우스, 최초의 개신교 예배를 드린 곳이자 루터가 결혼식을 올린 도시교회 등을 볼 수 있습니다.

 

도시를 걷는 길 중앙에 보이는 뾰족한 탑이 있는 교회가 루터가 반박문을 게시한 성교회입니다

 

우리가 방문한 때는 그 다음 해가 1517년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붙인 지 꼭 5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래서 거리 곳곳에는 포스터가 붙어있고 벌써부터 술렁이는 분위기입니다. 우리 일행은 성교회가 500주년 행사 준비로 내부 출입금지를 하기 전 마지막 행사로 진행한 음악회가 마치는 시간에 방문을 하게 되어 운 좋게 교회 내부도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먼저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붙인 성교회의 정문부터 살펴봅니다. 반박문을 붙일 당시에는 나무문이었는데 교회 전체가 18세기에 파괴된 후 재건해 현재는 청동문에 반박문이 촘촘하게 조각돼 있습니다.

 

 

성교회 실내에는 루터의 동상, 루터의 무덤도 눈에 띕니다.  

 

 

루터가 살던 집으로 지금은 루터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는 루터하우스도 돌아보았습니다. 루터가 속해있던 수도원 공간이라 집 치고는 규모가 큽니다. 루터는 원래 여기 수도원에서 생활했는데 95개조 반박문 이후 수도회가 해체되고 선제후의 도움으로 이곳에 머물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곳은  비텐베르크가 종교개혁의 중심지로 떠오르면서 많은 이들이 찾아와 공부하고 토론하는 사회적 공간으로 쓰여졌다고 합니다.

 

루터하우스로 지금은 루터박물관으로 사용중입니다

 

루터가 사용하던 설교대로 비텐베르크의 도시교회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루터의 초상화 
루터가 독일어로 번역한 성경책 사본

  

루터는 성서를 일반인 누구라도 읽을수 있도록 최초로 독일어로 번역합니다. 루터의 집에는 루터가 번역한 성경책 사본도 전시돼 있습니다. 루터는 이 번역작업을 우리가 며칠 후에 방문하게 되는 아이제나흐 바르트부르크 성에서 머물며 근 십여 주 만에 완성했다고 전해집니다.

 

크라나흐가 그린 십계명 작품입니다 . 루터를 그린 화가로 유명한 루카스 크라나흐는 루터의 친구이자 1537년부터 1544 년까지 비텐베르크 시장을 지낸 인물입니다 

 

비텐베르크 대학

 

1502년에 문을 연 비텐베르크 대학입니다. 루터가 여기서 교수로 학생을 가르쳤습니다. 이후에 비텐베르크 대학은 할레의 대학교와 합병하여 현재 할레에 위치한 할레 비텐베르크 마르틴 루터 대학교로 남아 있습니다.

 

도시교회(성 마리아 교회)

 

비텐베르크 구시가지에 있는 도시교회(성 마리아 교회)는 최초의 개신교 예배를 드린 상징적인 공간입니다. 오랫동안 루터가 이 곳에서 설교를 하며 활동한 현장이기도 합니다. 또한 루터가 16살 어린 수녀였던 아내(카타리나 본 포라)와 결혼식을 올린 곳입니다. 루터는 여기서만 2천 번 넘는 설교를 했다고 합니다. 루터박물관에서 본 루터 설교대도 여기에 있던 곳을 옮겨 놓은 것이라고 합니다. 교회에는 크라나흐가 그린 인상적인 제단화도 볼 수 있었습니다.

 

도시교회 실내에 있는 크라나흐가 그린 제단화

 

 

오후 한나절 비텐베르크 시내를 걸으며 500년 전 루터의 종교개혁의 흔적을 둘러보았습니다.  돈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며 면죄부를 팔며 부와 권력을 유지하는데 몰두했던 부패한 교회권력과 이에 맞선 루터의 새로운 종교 실험과 도전이 당시에 얼마나 도전적이고 치열했을까 상상해봅니다. 지금은 한적하고 나른한 도시의 풍경으로 다가오지만 500년이 지난 지금까지 기독교 역사에 중요한 변곡점이 된 역사의 현장이라고 생각하니 감회가 남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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