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계속으로/독일

할레에서 헨델의 흔적을 만나다

by 도토리초록별 2020. 5. 2.

 

헨델의 고향, 할레를 다녀왔습니다. 헨델은 바흐와 함께 17세기 바로크 시대를 빛낸 뛰어난 음악가입니다. 

독일 동부의 작센 주에 위치한 할레는 라이프치히에서 차로 30분가량 떨어진 곳입니다. 헨델이 태어난 곳으로 매년 헨델 페스티벌이 열리는 음악의 도시입니다. 마르틴 루터의 흔적도 느낄 수 있습니다. 루터의 데스마스크와 손자국이 할레의 마르크트 교회에 남겨져 있거든요. 또한 헨델과 동시대를 산 바흐의 자취도 남아있는 역사 문화의 향기가 그윽한 곳입니다.

 

 

반나절 가량의 짧은 시내투어로 할레의 구시가지 광장에 위치한 쌍둥이 첨탑이 눈에 띄는 마르크트 교회(마리엔교회), 붉은 탑(시계탑), 헨델 동상, 골목으로 5분여만 들어가면 만나게 되는 헨델 박물관(헨델생가)을 돌아보며 헨델의 삶과 인생, 할레를 거쳐간 루터와 바흐까지 독일 역사와 예술의 흔적들을 만나보았습니다.

 

 

할레의 마르크트 교회(Marktkirche)를 방문한 날은 일요일입니다. 교회 방문이 주일 예배 시간과 겹칠까 우려했는데, 운 좋게 예배 시작 전 성가대 연습 시간에 방문해 교회를 둘러보는 데 지장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교회의 공간을 압도하는 아름다운 파이프오르간 연주와 성가대의 하모니가 우리의 방문을 반겨주는 것 같아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마르크트 교회에는 앞뒤로 파이프오르간 2대가 배치되어 있습니다. 앞에 있는 오르간은 할레가 고향인 어린 헨델이 치던 파이프오르간이고, 또 한 대는 바흐가 연주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바흐가 우리가 아는 요한 세바스찬 바흐가 아니라 그의 아들 빌헬름 프리드만 바흐라고 합니다. 바흐의 집안은 음악가 집안으로 유명합니다. 아들 바흐가 할레의 교회에서 활동했다고 전해집니다.

 

 

물론 현재 성가대가 이용하는 파이프오르간은 이후 새것으로 교체한 것이긴 하지만요. 바로크 시대를 풍미한 거장들이 거쳐간 고풍스러운 교회에서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며 둘러보는 기분이 멋졌습니다.

또한 이 교회는 마르틴 루터의 숨결이 어린 곳이기도 합니다. 루터는 이 교회에서 여러 차례  설교를 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런 인연인지 루터 사후에 장례식을 위해 비텐베르크로 이동하는 중에 잠시 들리게 되고, 그때 남긴 루터의 데스마스크와 손자국 원본이 이 곳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광장에 우뚝 솟은 종탑(시계탑)은 일명 붉은 탑으로 불리는 건축물입니다. 1418년에서 1506년 사이에 건립된 고풍스러운 건물로 탑 안에 작은 종이 76개나 있다고 합니다.

 

 

붉은 탑 옆으로는 헨델 동상이 우뚝 서 있습니다. 1859년 헨델 서거 100주년을 기념해 영국과 독일에서 모금해서 건립한 것입니다. 헨델은 고향인 독일에서 음악 활동을 하기보다는 주로 영국에서 오페라와 오라토리오 활동으로 음악적 역량을 드러냅니다. 나중에는 아예 영국으로 귀화했으며 사후에 그의 시신도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성당에 안치되었습니다.

 

 

현재 박물관으로 조성된 헨델의 생가를 둘러봅니다. 해설자의 상세한 설명으로 헨델의 일생을 따라가 봅니다. 부유한 가정에서 성장한 헨델은 법률가가 되기 바라는 아버지의 반대는 있었으나 어려서부터 재능을 나타낸 음악의 길을 걷기 시작하고, 이탈리아 여행과 하노버, 영국, 아일랜드까지 해외의 곳곳을 누비며 많은 작품 활동을 펼칩니다.

사업가적 재능도 뛰어나 오페라, 오라토리오 등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이어갑니다. 말년에는 돌팔이 의사의 백내장 시술로 시력을 잃게 되는데, 그 의사가 바흐의 시력도 잃게 한 인물이라니 어이없기도 하고, 헨델과 바흐의 인연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헨델은 바흐와 거의 동시대를 살았고, 태어난 동네도 그리 멀지 않은 인근입니다. 그럼에도 공식적으로는 단 한 번도 둘이 만난 적이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바흐가 알고 지낸 음악인들이 모두 헨델이 알고 지낸 사람들이라는데 작은 동네에서 그들이 조우하지 않은 것이 가능한 걸까요. 그들의 만남이 대중들에게 드러나지 않은 걸까요. 아니면 부유한 귀족 출신의 금수저 헨델과 지금으로 치면 가난한 음악 공무원인 흙수저 바흐가 서로를 피했던 건 아닐까요. 동시대를 산 바흐와 헨델의 서로의 음악적 견제와 영향력, 관계가 궁금해지는 대목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