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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기록

봄꽃이 화사한 당진 안국사지 삼존불상

by 도토리초록별 2020. 4. 2.

 

꽃 피는 봄에 조용히 다녀오기 좋은 문화유적지로 충남 당진의 안국사지를 소개합니다. 안국사는 고려 시대에 크게 번창했다는 기록이 전해지지만 지금은 빈 절터에 불상과 석탑만이 역사의 흔적을 말해주는 곳입니다. 4월이 시작하는 첫날, 당진 안국사지를 다녀왔습니다.

 

 

큰 도로에서 좁은 마을길로 접어들어 작은 저수지를 지나면 작은 언덕 위로 삼존불상과 석탑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럼 잘 찾아오신 겁니다. 그 앞에는 소나무와 큰 바위 문이 있는 작은 쉼터 공간도 보입니다. 안국사지는 여기서 위로 더 올라가야 나온다고 안내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절터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으니 오늘은 불상과 석탑이 있는 공간만 한 바퀴 둘러봅니다.

 

 

불상은 삼존불로 키가 큰 본존불을 중앙에 두고 좌우에 협시보살이 서 있는 모습입니다. 왼쪽 보살은 머리가 파손되어 있습니다. 문화재청에 등록된 정식 명칭은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입니다.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불상으로 보물 100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가운데 서 있는 본존불은 머리와 몸이 하나의 돌로 만들어진 석불입니다. 키가 큰데 머리와 몸의 균형이 잘 맞지 않고 머리 위에 사각형의 커다란 보개를 쓰고 있습니다. 조형미는 떨어지지만 표정이 동네 아주머니처럼 편안해 보이네요. 손가락 모양도 선명하게 잘 남아있습니다. 이런 석불상의 형태는 고려시대 충청도 지방에서 유행한 양식이라고 합니다. 독특한 것은 석불상의 두툼한 발가락입니다. 고려시대 불상 중에서 이렇게 발가락까지 온전히 남아 있는 경우가 많지 않다고 합니다. 신기해서 저도 발가락을 꼼꼼히 관찰했습니다.^^

 

 

삼존불상 앞에는 보물 101호로 지정된 당진 안국사지 석탑이 서 있습니다. 오층 석탑으로 추정하는데 현재는 1층 몸돌과 1층에서 4층까지의 지붕돌만 남아 그대로 쌓아두고 있는 모습입니다. 몸돌에는 여래좌상이 1개씩 3면에 조각돼 있는 것도 볼 수 있었습니다.

 

 

삼존불상 뒤에 독특하게 생긴 커다란 바위가 눈에 들어옵니다. 생긴 모양이 배 같다 해서 배바위라고도 불리는 당진 안국사지 매향암각입니다. 바위에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매향 의식을 치른 내용을 소개한 명문이라고 하는군요. 예전에 전남 신안의 암태도에 갔을 때 봤던 매향비가 떠올라 안내문의 내용을 꼼꼼히 읽어보았습니다.

매향은 미륵신앙의 형태로 향나무를 땅에 묻고 소원을 비는 것이라고 합니다. 고려시대 몽고와 왜구의 침입으로 어려움을 겪은 백성들이 마음의 위안을 얻고자 여기 안국사를 찾아와 향나무를 묻으며 신앙 활동을 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어려움을 겪는 민초들이 신앙에 의지하며 위안과 희망을 얻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고통받는 세계 곳곳의 사람들도 저마다의 믿음과 소망으로 현재의 위기를 잘 넘기기를 바래봅니다.

안국사지의 삼존불과 석탑, 매향암각을 둘러보는 동안 사람은 없고 공간은 고요하기만 합니다. 모처럼 고즈넉한 여유를 누립니다. 근처에 수선화로 이름이 난 유기방 가옥이 있어선지 불상과 석탑 주위에도 옹기종기 피어난 노란 수선화가 화사한 봄빛을 느끼게 해 줍니다.

 

 

불상 뒤편으로 조금 걸어가 보니 새로 지은 전각들 앞으로 알록달록 봄꽃들이 피어있습니다. 인적 없는 조용한 유적지에서 고요히 피어난 봄꽃들을 구경하는 행복한 시간입니다. 연분홍빛 살구꽃과 노란 수선화, 보라색 무스카리, 붉은 동백꽃까지 여유롭게 잘 구경했습니다.

많이 알려지지 않아 인파 걱정 없이 조용히 다녀오기 좋은 곳, 알록달록 봄꽃들의 인사를 받으며 유적답사의 즐거움을 챙길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안국사지는 바로 지척에 있는 서산 유기방 가옥의 번잡함과 비교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지난주에 다녀온 유기방 가옥 부근을 오늘 차로 지나며 보니, 마을 주민들이 길 입구에 몰려나와 유기방 가옥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더군요. 수선화 축제를 취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선화 만개에 맞춰 사람들이 몰려서라고 합니다. 사람이 모이는 것을 두려워해야 하는 이런 이상한 코로나 시국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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