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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기록

섬진강이 말을 걸다, 구담마을 진뫼마을(임실)

by 도토리초록별 2020. 4. 7.


처음 섬진강 오지마을인 구담마을에 갔을 때가 기억난다. 전북 임실의 구담마을은 섬진강이 부드럽게 감싸고도는 강변마을이다. 방문했을 때는 3월 말로 봄볕이 구석구석 닿은 강변과 마을의 느낌이 평화로웠다. 철 지난 억새가 흔들리는 강둑에는 초록 풀들이 번지고 햇빛을 받은 강물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오붓한 강변길을 거닐며 만나보던 마을의 느낌이 좋아 이후에 여러 차례 발길을 더했던 곳이다. 딱 이맘때, 3월 말에서 4월 초면 하얀 매화꽃이 더해져 강변 풍경이 화사하게 빛나던 구담마을이 그리워지는 오늘이다.

 


지금 구담마을로 달려갈 수 있다면, 제일 먼저 구담마을 한쪽 끝에 있는 당산나무 언덕에 올라 굽이치는 섬진강 물줄기를 바라보고 싶다. 전북 진안 데미샘에서 작은 물방울로 솟아 여기까지 흘러온 섬진강은 주변의 산들과 어우러지면서 유유히 흐른다. 산을 만나면 산을 따라 돌고, 바위가 나오면 바윗돌을 피하며 굽이쳐 흐르는 강물은 우리의 마음을 잔잔하게 위로해 준다. 좋을 때나 힘들 때나 삶의 순간마다 때로는 맞서고 때로는 피하면서 멈추지 않고 걸어온 우리들 인생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바다를 만날 때까지 저렇게 계속 흘러가겠지. 강물에게 용기를 얻는다.

 


아름드리 느티나무 고목들이 있는 당산언덕에서 섬진강을 느긋하게 감상한 뒤에는 강가로 내려가서 징검다리를 건너봐야 한다. 구담마을과 강 건너 내룡마을을 잇는 징검다리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징검다리를 경계로 임실과 순창으로 행정구역도 갈린다. 우리가 어디서 이런 정겨운 다리를 건너볼 수 있을까. 징검다리에서 바라보는 언덕 위의 구담마을도 평화롭기만 하다. 물론 징검다리 옆으로 사람도 차도 지날 수 있는 시멘트 다리가 놓여있으니 징검다리는 재미로 건너보는 것이다. 

 


징검다리를 건너 나오는 내룡마을 앞 강변에는 널찍하게 형성된 구멍이 깊게 뚫린 독특한 바위 지대가 나온다. 장구목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강바닥에 넓게 형성된 구멍바위 지대이다. 그중에서 가장 큰 구멍이 있는 바위가 요강바위다. 요강바위는 한국전쟁 때는 사람이 숨어 목숨을 구하기도 하고 아이를 갖지 못하는 여자가 아이를 가진다는 전설도 남아있는 마을 사람들이 신령스럽게 여기는 바위이다. 수 십 년 전에는 외부인이 요강바위를 반출하려다 마을 주민들에게 발각돼 주민들의 힘으로 되찾아온 사연 많은 바위이기도 하다. 

 


구담마을과 섬진강으로 이어지는 인근의 진뫼마을은 섬진강 시인으로 알려진 김용택 시인의 고향마을이다. 구담마을에서 강가를 따라 조금만 걸어가면 그가 태어나 살던 진뫼마을이 나오고, 그 옆엔 시인이 38년간 초등학교 교사로 일한 덕치초등학교가 붙어있다. 이제 정년퇴직한 김용택 시인은 김용택 문학관으로 조성한 생가 건물 옆에 살림집을 짓고 섬진강과 더불어 살고 있다. 시인에게 섬진강은 ‘부모 같고, 형제 같고, 제 몸같이’ 자연스럽게 곁에 있었던 존재라고 한다. 그러니 그의 섬진강 연작시는 그의 삶이고 세계였으리라 짐작이 된다.  

 



섬진강 3
 
그대 정들었으리.
지는 해 바라보며
반짝이는 잔물결이 한없이 밀려와
그대 앞에 또 강 건너 물가에
깊이 깊이 잦아지니
그대, 그대 모르게
물 깊은 곳에 정들었으리.
풀꽃이 피고 어느새 또 지고
풀씨도 지고
그 위에 서리 하얗게 내린
풀잎에 마음 기대며
그대 언제나 여기까지 와 섰으니
그만큼 와서 해는 지고
물 앞에 목말라 물 그리며
서러웠고 기뻤고 행복했고
사랑에 두 어깨 깊이 울먹였으니
그대 이제 물 깊이 그리움 심었으리
기다리는 이 없어도 물가에서
돌아오는 저녁길
그대 이 길 돌멩이, 풀잎 하나에도
눈익어 정들었으니
이 땅에 정들었으리.
더 키워나가야 할
사랑 그리며
하나둘 불빛 살아나는 동네
멀리서 그윽이 바라보는
그대 야윈 등,
어느덧
아름다운 사랑 짊어졌으리.

김용택 『섬진강』  


지금도 매일 강변을 산책한다는 시인은 “강변을 가만히 걷고 있으면 자연이 내게 말을 건다.”라고 말한다. 나도 임실 섬진강 강변마을로 달려가 자연이 건네는 말에 귀 기울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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