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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기록

(산책 일기: 관악산의 봄) 20200403 아직은 연두, 진달래 활짝

by 도토리초록별 2020. 4. 4.

 

집 뒷산 관악산에 올랐다. 바람이 제법 분다. 그래도 봄기운이 가득하다. 관악산으로 이어지는 아파트 둘레길엔 며칠 사이에 벚꽃이 활짝 폈다. 산수유와 매화가 지는 옆으로 개나리가 절정이다. 바깥공기가 상쾌하다. 사람들 대부분이 마스크를 낀 채 걷고 있다. 그래도 표정은 좋아 보인다. 코로나19 때문에 일도 못하고 친구도 못 만나며 집 안에 갇혀 지내는 생활에서 동네 산책은 몸도 마음도 넉넉해지는 소중한 일상이다.

 

 

산책을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국어사전에 보면 산책은 느긋한 기분으로 한가롭게 거니는 것이라고 한다. 나의 경험에  비춰볼 때 느긋한 마음과 걷는 행위가 동시에 이뤄지는 게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몸을 움직이는 것과 마음의 상태가 어우러질 때 두뇌도 삼박자로 작용하나 보다. 산책은 기분을 밝게 만들고 마음을 가볍게 한다. 끙끙대던 머릿속의 과제들도 살짝 내려놓을 수 있다. 머리가 맑아지고 숨통이 트인다. 나를 괴롭히던 일들에서 한 발 짝 떨어질 수 있다. 걸으면서 운동도 되니 건강에도 좋다. 내가 산책을 즐기는 이유다.

 

 

아파트 둘레길을 지나 관악산 산책로로 들어섰다. 이제 막 돋아난 연둣빛 이파리들이 오후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난다. ~ 아름답고 기특하고 반가운 마음이 왈칵 든다. 우리가 코로나19로 위축돼서 숨죽이고 지내는 때에도 숲에는 봄이 진행 중이다. 제 몫을 하며 봄을 만들어가는 숲과 자연의 활동에 감동이 차 오른다.

 

아직은 연두

 

난 연두가 좋아 초록이 아닌 연두

우물물에 설렁설렁 씻어 아삭 씹는

풋풋한 오이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옷깃에 쓱쓱 닦아 아사삭 깨물어 먹는

시큼한 풋사과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한 연두

풋자두와 풋살구의 시큼시큼 풋풋한 연두

난 연두가 좋아 아직은 풋내가 나는 연두

연초록 그늘을 쫙쫙 펴는 버드나무의 연두

기지개 쭉쭉 켜는 느티나무의 연두

난 연두가 좋아 초록이 아닌 연두

누가 뭐래도 푸릇푸릇 초록으로 가는 연두

빈집 감나무의 떫은 연두

강변 미루나무의 시시껄렁한 연두

난 연두가 좋아 늘 내 곁에 두고 싶은 연두

연두색 형광펜 연두색 가방 연두색 팬티

연두색 티셔츠 연두색 커튼 연두색 베갯잇

난 연두가 좋아 연두색 타월로 박박 밀면

내 막막한 꿈도 연둣빛이 될 것 같은 연두

시시콜콜 마냥 즐거워하는 철부지 같은 연두

몸 안에 날개가 들어 있다는 것도 까마득 모른 채

배추 잎을 신나게 갉아먹는 연두 애벌레 같은 연두

아직 많은 것이 지나간 어른이 아니어서 좋은 연두

난 연두가 좋아 아직은 초록이 아닌 연두.

 

-박성우, 『난 빨강』 (창비)

 

박성우 시인의 시에 고개가 끄덕여진. 연두는 초록이 아니다. 아직은 연두이다. 하지만 초록을 품고 초록을 향해가는 것이 연두이다. 그래서 우린 연두에서 희망을 발견한다. 그래서 희망을 품은 연두를 보니 마음이 설렌다. 연두 새순들은 숲이 우리에게 주는 희망인 것이다.

 

 

연둣빛 물결에 취해 발걸음도 산뜻하게 관악산을 올랐다. 길 옆으로 어느새 조팝나무 흰 꽃송이가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노란색 황매화도 피기 시작했다. 아직 산에는 검은 갈색의 나무줄기와 앙상한 가지, 떨구지 못한 채 말라버린 낙엽이 눈에 많이 띈다. 칙칙한 겨울빛이 가득하다. 하지만 어느새 겨울을 견디고 솟구치는 어린 연두와 알록달록한 꽃들이 속속 출격 중이다. 목련과 개나리도 봄빛을 더하고 있다.

 

 

그래도 요즘 관악산의 주인공이 진달래란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분홍빛의 꽃 점을 수놓으며 관악산 산책길을 화사하게 밝히고 있다. 2주 전에 한 두 송이씩 피어나던 진달래가 어느새 만개했다. 이제 곧 다른 꽃들에게 자리를 내 주기 직전이다.

 

 

관악산 산책로에서 진달래의 마지막 절정을 천천히 감상했다. 이 정도면 진달래를 보러 멀리 갈 필요가 없겠다. 늘 우리가 사는 근처에 피어있던 진달래꽃. 국토의 70%가 산으로 되어 있어 늘 가까운 곳에 산을 끼고 살았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소나무와 진달래는 친숙한 존재다. 우리나라 어느 산에나 잘 어울리고, 늘 자주 봐서 익숙하고 정다운 진달래꽃.

이제는 꽃잎을 떨군 자리에 잎을 틔우며 여름을 향해 달려가는 진달래꽃의 아름다운 퇴장을 보며 나는 어디로 가고 있나 가만가만 생각해본다. 초록을 품은 연두 새이파리에서, 절정을 지나 다음 단계를 준비하는 진달래꽃을 보며 나도 힘을 낸다. 희망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의 길을 걷자고 마음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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