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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기록

(독서 일기) 여행을 즐기는 나는 방랑자인가, 탐험가인가 ; 김명철의 <여행의 심리학>

by 도토리초록별 2020. 4. 28.

 

 

여행에 정답은 없다. 성격에 따라 저마다 즐기는 여행

 

여행을 좋아하고 자주 하는 편이다. 어떤 때는 일정이 빡빡한 문화탐방 여행이 알차고 뿌듯한 날이 있는가 하면, 경치 좋은 자연에서 시간에 쫓기지 않고 유유자적 쉴 수 있을 때 바로 이거야하며 휴식 여행을 최고로 치기도 한다. 내가 처한 여건에 따라 다른 거겠지 추정하면서도 나의 여행 취향과 여행 패턴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러다 발견한 책이 <여행의 심리학>이다. 여행을 좋아하는 심리학자가 쓴 책이다. 심리학으로 조명한 여행은 어떤 모습인지 궁금했다. 뭔가 나의 여행의 취향과 여행의 성격을 제대로 밝혀줄 것 같아 기대된다.

우선 우리가 왜 여행을 하는지 동기를 파헤쳐본다.

메밀랜드 대학의 이소 아홀라는 행동주의 심리학에서 유래한 접근-회피 동기 개념을 이용해 “사람들은 왜 여행을 떠날까?”라는 질문에 답함으로써 여행 동기 연구에 오랜 기간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인간은 무언가를 얻고 무언가를 하려는 ‘접근 동기’에 따라 행동에 나서기도 하지만, 무언가를 피하고 무언가를 하지 않으려는 ‘회피 동기’에 따라 움직이기도 한다. 이소 아홀라는 여행도 이와 똑같다고 말한다. 여행은 무엇인가를 피하려는 회피 활동인 동시에 무엇인가를 얻으려 하는 접근 활동이다. 여행은 도피이자 탐색이며 탈출이자 추구이다.

일상의 지루함에서 벗어나려는 사람은 여행을 통해 짜릿함과 재미를 찾아 나선다. 삶의 스트레스를 벗어나려 하는 사람은 여행을 통해 일과 가사에서 해방되어 편안함과 휴식을 얻기를 바란다. 한국 사람들과 한국 문화에서 탈출하고 싶은 사람은 여행을 통해 이국 타향의 문화에 취하려 하다. 의무적이고 피상적인 인간관계에 지친 사람은 여행을 통해 진솔하고 깊은 인간관계를 만들려 한다. 결론적으로 여행은 우리가 회피하려 하는 일상의 어떤 것들과 정반대에 위치해 있는 경험에 접근하는 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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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를 고르고 여행을 짜면서도 정작 여행 주체인 의 관심과 필요는 간과하고 있었다. 재미있는 여행, 배움이 있는 여행을 꿈꾸면서도 내게 필요한 여행, 내게 딱 맞는 여행을 파악하기 위해 내 상태를 점검하는 데는 소흘했다는 걸 알게 됐다. 내가 어떤 성격인지, 내가 여행하려는 의도는 무엇인지 모르는 채 나를 행복하게 하는 여행지만 찾고 있었던 셈이다. 여행의 가성비와 만족감의 측면에서 효과적이지 않은 접근이었다.

저자는 모든 잠재적 여행자의 마음에는 접근 동기와 회피 동기가 모두 공존하며 여행을 부추긴다고 말한다. 다만 사람마다 어느 정도 비중인가에 따라 양상이 다르다는 것이다. 극단적인 예로 든 것이 재밌다. 회피 동기가 극단적으로 높고 접근 동기가 불명확할 경우에는 방랑자가 탄생한다고 한다. 그 예는 자본주의와 물질문명에 염증을 느낀 히피 여행자를 꼽는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탈출 욕구보다 추구 욕구나 접근 동기가 강한 경우에는 탐험이나 교육여행이 가능하다고 한다. 바로 탐험가 유형인 셈이다.

지난 나의 여행의 역사를 돌이켜 보니 어렴풋이나마 방랑자처럼 떠났던 여행에서부터 탐험가처럼 눈에 힘을 주고 다른 세상을 알고 경험하기 위해 다녔던 여행의 기억들이 떠오른다. 그때마다 나의 여행의 스타일과 욕구가 달랐던 것이 그래서였구나 고개가 끄덕여진다.

여행의 동기 외에도 성격에 따라 여행자의 선호가 다르고 당연히 만족감도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외향성 여부, 개방성의 정도도 각 개인이 여행을 선택하고 여행을 즐기는데 영향을 미친다는 이야기다.

성격이 외향적인 사람, 즉 외향인은 심리적 에너지 수준이 높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신경계가 차분하게 유지되는 상태보다는 자극을 받아서 각성된 상태를 선호하고, 조용히 내적 성찰을 하기보다는 나가서 힘차게 사교활동을 하고 활동적인 일을 하려 한다. 반면 내향적인 사람은 심리적 에너지 수준이 낮다. 외향인이 지루함을 견디기 힘들어한다면 내향인은 신경계가 지나치게 흥분된 상태를 불편해한다. 내향인은 번잡함에서 탈출하여 평온함을 취하려 하고, 많은 사람이 모인 북적북적한 자리보다는 친밀한 소수와 맺는 알찬 사회적 관계를 즐긴다.

한편 개방성은 새로운 지식, 아이디어, 가치, 사상, 감정, 행동에 ‘열려 있는’ 정도를 뜻하는 성격 특성이다. 개방성이 높은 사람은 익숙하지 않은 것에 관용을 보이고, 새로운 것에 호기심을 느끼며, 새로운 지식이나 경험을 찾아다닌다. 반면 개방성이 낮은 사람은 새로운 것보다는 친숙한 것에 더 끌린다. 이들은 해보지 않은 일, 먹어보지 않은 음식, 가보지 않은 곳의 위험성(안전이나 위생 또는 나와 맞지 않을 가능성)에 신경을 많이 쓰고 이런 것들을 거북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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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는 차분하고 조용한 생활을 선호하는 내가 여행을 가서는 의외로 낯선 문화에 별 두려움이 없고, 처음 접한 음식이나 문화에도 부딪치고 도전하는 것을 좋아하는 모습에 의아하기도 했는데, 이 책을 읽으니 다소 이해가 된다. 내향인의 성향이 다소 강하고 개방성은 높은 나의 성격적 특성을 파악하니 나의 여행 패턴이 보다 분명하게 보인다.

 

여행은 나를 성장시키고 행복하게 만든다

 

돌이켜보면 여행을 좋아하게 된 것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여행의 긍정 효과를 느끼면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어려서 부모님의 손을 잡고 여행을 할 기회가 많았다. 자발적인 동기 없이 따라나섰던 순간들이지만 그때 받은 느낌은 재밌고 신기했고 새로웠다. 그래서 여행은 좋은 것이라는 경험이 나의 뇌리에 차곡차곡 쌓였으리라. 어떤 이유로 여행이 좋은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여행을 다녀오면 자연스레 마음이 상쾌해지고 새 기운이 솟는 것을 몸으로 기분으로 알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여행의 심리학>에서는 내가 몸으로 겪었던 여행의 긍정 효과를 보다 개념화된 언어들로 설명해준다.

 

여행에서 우리는 다양한 긍정 정서가 연주하는 행복한 화음을 온몸으로 만끽할 수 있다.

여행은 온전히 내가 원해서 하는 것으로 기분 좋은 흥분과 기대감을 느끼는데 특화된 활동이라 할 수 있다.

여행은 자신의 건강 상태에 더 만족하게 해주고 직장과 일에도, 집안 대소사에도, 자신의 경제 수준에도, 주거 환경에도 더 만족하게 해준다. ‘나’는 여행의 행복을 경험할 수 있는, 여러모로 만족스러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여행은 소중한 사람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싶을 때 사용할 수 있는 즉효약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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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정서와 만족감 외에도 여행은 우리를 성장하게 하는 배움의 장이다.

매슈 스톤과 제임스 페트릭은 여행이 ‘경험학습’을 유발하기 때문에 이런 자기 성장이 효과를 가져온다고 설명했다. 경험학습이란 우리의 기존의 지식이나 경험 또는 호기심을 바탕으로 능동적인 실험을 하고, 실험을 통해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경험을 하며, 이 경험의 내용을 머릿속으로 곱씹으면서 추상적인 개념을 도출해내는 학습 과정을 뜻한다. 일, 놀이, 공부 등 인간이 하는 대부분의 활동에서 이 경험학습이 발생할 수 있지만, 특히 여행은 경험학습 과정이 유별나게 중요하고 유별나게 자주 일어나는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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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다양한 정서를 강렬하게 경험할 수 있는 활동이다. 정서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 수준이 높아지면 자연히 자신의 정서를 조절하고 타인의 정서에 대처하는 방법을 고민하게 되며, 이와 관련된 기술이 향상된다.

여행은 문화지능의 상승과도 깊은 관계를 맺는다. 문화지능은 이질적인 사고방식, 사회제도, 예술 양식, 언어, 음식 등과 마주쳤을 때 이를 단칼에 거부해버리지 않고, 일단 관용하는 자세로 받아들여 각 문화적 요소들의 장단점을 숙고할 줄 아는 개방적인 태도와 수용력에서 출발한다. 문화지능을 상승시키는 데에는 여행이라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문화적 접촉 경험보다 더 좋은 스승이 없다.

만족스럽고 행복한 여행을 반복하다 보면 우리는 어떤 일이든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 여행을 통해 심리적으로 성장하는 것이며, 심리학 용어로는 “자존감이 상승했다”고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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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히 여행 예찬이다. 저자도 나만큼이나 여행을 좋아하나 보다. 이렇게 여행에 대해 학문적으로 의미와 효과를 짚어주니 여행에 대한 자부심이 더 커진다. 그렇다고 여행만 다닐 수도 없는데 말이다. 그렇다면 한번 다녀온 여행의 효과는 얼마나 지속될까. 책에서는 여행의 만족감이 지속되는 기간에 대한 언급도 나와서 흥미롭다.

여행의 행복과 여행을 통해 획득한 여러 만족감은 한순간보다는 아주 조금 긴 정도에 불과한 기간 동안, 즉 최소 3일에서 최대 3주 정도 지속된다.

여행과 행복을 따져본 여러 연구자는 여행이 단기적인 행복을 증가시키기는 하지만 장기적인 행복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한다고 입을 모은다. 따라서 여행은 그 자체만으로는 삶의 목적이 될 수 없다. 오직 꾸준히 여행하며 자주자주 행복을 경험하는, 그리하여 자신과 소중한 사람들의 삶에 주기적으로 활력을 불어넣는 ‘여행하는 삶’이 인생의 목표가 될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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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좋은 여행을 위해 여행 주체인 의 여행 동기와 성격을 파악한 후에는 여행의 일반적인 지식과 기술을 이해해야 나에게 맞는 여행을 잘 선택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여행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몇 가지로 구분해 설명한다. 우선 모든 여행자와 관련되는 기본 요소로는 음식, 기후, 경치를 꼽는다. 여행할 때 주의해야 할 불만족 요소로는 위생 문제와 안전 문제가 있다. 마지막으로 여행을 구성하는 테마 요소로 역사 유적, 액티비티, 해변여행, 쇼핑 등을 제시한다. 나의 여행을 선택할 때 꼼꼼히 따져보면 유익할 정보들이다.

 

여행은 열려 있다

 

여행이 늘 순조로울 수는 없다. 예기치 못한 변수가 언제 등장할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나름대로 꼼꼼히 여행을 준비했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이런 여행의 불확실성은 불안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동시에 더 멋진 경험으로 이끌지도 모른다. 여행이 주는 설렘은 확정되지 않은 시공간이 주는 기대감이기도 하니까.

여행의 기본 요소인 날씨는 정말이지 여행의 많은 것을 좌우한다. 날씨가 좋으면 여행이 얼마나 화사하고 발랄해지는지 수도 없이 경험했다. 하지만 날씨가 나쁘더라도 낭패라고 여길 건 아니다. 반전과도 같이 풍랑이 지나간 직후의 날씨가 얼마나 깨끗하고 청명한지 여러 번 경험했다. 갑자기 쏟아진 눈으로 아름다운 겨울 풍경을 만끽하기도 하고, 비를 피해 들린 작은 찻집에서 아늑한 한 때를 선물받기도 한다. 여행의 완성은 수행 목표의 달성이 아니라 행복의 실현이니까 우린 어떤 경우에도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다.

여행 동반자와 내가 여행 취향이 다를 때는 어떤가. 가까운 관계라도 성격이나 취향은 대부분 다른 게 현실이다. 즐거운 여행이 가능할까.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양보해야 한다면 그런 여행은 안하느니만 못하다.

저자는 여행 동반자들의 성격과 취향의 유사성은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동반자들이 서로를 존중하고, 자주 소통하고, 서로의 욕구와 취향과 가치를 절충하거나 공유함으로써 좋은 여행을 만들어나가려는 의지가 있느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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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이야기다

 

여행을 떠나서 우리가 어떤 마음가짐을 갖는 게 유용한지 저자는 두 가지를 권한다. 하나는 마음을 챙기며 여행하기이고 또 하나는 부정 정서에 휩쓸리지 않기이다.

여행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마음 챙김이란 여행 중 발생하는 모든 상황에 항상 호기심을 품고, 이와 관련된 정보를 수집하고 종합하여 능동적인 해석을 내놓는 것이다.

모든 일에 호기심을 품고, 이국의 경치와 기후에 마음을 쓰고, 역사 유적과 관련된 정보를 얻으려 하고, 낯선 종교와 음식을 자기 나름대로 분석하고 해석해보는 사람, 즉 마음을 챙기며 여행하는 사람은 이런 다양한 여행 요소를 최대한 즐기는 사람이다. 당연히 이들은 주어진 자원과 환경 내에서 자신의 여행 만족도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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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마치고 나면 끝인가. 아니다. 이제 우리는 여행에서 겪은 소중했던 시간과 행복했던 기억을 오래오래 기억되도록 정리해야 한다. 즐거운 여행의 효과를 오래도록 간직하기 위해서다.

우리는 우리 여행을 여러 편의 재미난 이야기로 만들어야 한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언제나 여행의 주체인 우리 자신일 수밖에 없다 이런 이야기를 만들고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면서 우리는 이 여행이 자신에게 전체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깨달을 수 있고, 우리가 여행 중에 겪었던 여러 가지 좋은 일과 여러 가지 나쁜 일의 세세한 의미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이야기 안에 배치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좋았던 일은 강렬한 추억이 되고, 나뻤던 일은 귀중한 배움이 된다. 우리의 휴가여행은 가족의 가치를 찾아 나선 탐험이 되고 우리의 장기 여행은 낯선 자아를 찾아내 나 자신을 풍요롭게 만든 자아실현의 여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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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으며, 다음 여행을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기대해 본다. 각자의 성격과 여행 취향을 이해하고 존중하면서도 함께 즐기고 함께 성장하는 그런 여행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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