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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기록

(산책일기) 숲에서는 모두가 주인공이다

by 도토리초록별 2020. 6. 22.

20204월부터 5월까지 관악산 산책로 초록 식물 관찰일기

 

올봄에 집 근처의 관악산 산책로를 자주 걸었다. 등산 수준은 아니고 가볍게 산책하는 코스로 다녔다. 내 걷기 수준에 맞는 만큼만 걸었고 오고 가는 길에 숲에 핀 나무와 꽃을 관찰하는 게 즐거웠다. 신종감염병으로 외부활동에 제약을 받으면서 불가피하게 만들어진 여건이지만 오히려 새로운 것을 많이 발견하고 배우는 시간이 됐다.

 

 

매번 같은 코스로 관악산 산책로를 걷다 보니 숲의 변화가 저절로 눈에 들어온다. 3월에는 흙빛과 거무스레한 나무줄기들이 숲을 채우고 있어 다소 칙칙한 풍경이다. 4월에 들어서자 연둣빛 새순들이 조금씩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초봄 연두의 밝고 상큼함은 겨울을 이겨낸 봄의 생환을 알리는 감동으로 다가왔다. 연둣빛 새순과 함께 등장한 분홍 진달래도 숲의 색깔을 화사하고 밝게 만들어낸 일등 공신이다.

 

 

숲에는 순서가 있다. 숲을 걸으며 순서에 따라 피고 자라는 푸른 생명들을 만났다. 작은 잎이 점점 커지면서 제 모습을 분명히 드러낸다. 꽃봉오리가 올라오더니 무르익어 꽃을 피운다. 어느새 꽃잎이 떨어지면 이젠 열매가 영글어간다.

이번에 관악산 숲에서 나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던 것은 때죽나무와 쪽동백나무다. 때죽나무는 4월 초에 앙증맞은 이파리가 봄의 기운을 한껏 내뿜고 있어 그만 반해 버렸다. 저 나무가 뭘까 궁금해 식물도감을 확인해 때죽나무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이후 하얗게 피어난 꽃까지 지켜볼 수 있었다.

 

2020.4.3. 때죽나무 이파리
2020.5.18 때죽나무꽃

 

쪽동백나무는 포도송이처럼 생긴 하얀 꽃을 피워낸다. 숲을 좋아하는 지인이 좋아하는 나무여서 기억에 새겨져 있다. 또 둥근 잎 모양이 사랑스러워 숲을 걷다가 자주 카메라를 들이대던 나무이기도 하다. 지난가을 관악산을 걷다가 쪽동백나무 군락지를 발견했었다. 산책로 바로 옆으로 서너 그루가 모여 있어서 이번 봄에는 언제 잎이 나고 꽃이 피는지 눈여겨보았다. 활짝 핀 꽃과 다 큰 잎만 기억하는 내게 이번에 새로운 모습도 보여주었다. 새이파리가 나올 때 동시에 꽃봉오리가 맺혀서 자란다는 점이다. 독특하고 신기했다.

 

2020.4.11 쪽동백나무 이파리와 꽃봉오리
202.5.11 쪽동백나무꽃

 

숲에서는 모두가 주인공이다. 처음엔 거무튀튀한 겨울의 숲을 푸르고 알록달록하게 물드는 귀여운 이파리와 진달래가 주인공이었다. 그러나 진달래가 지고는 각시붓꽃, 산벚꽃과 목련이 등장했다. 그 뒤를 이어서는 애기똥풀, 철쭉이 피어났다. 다음에는 하얀색의 찔레꽃과 때죽나무 꽃, 쪽동백나무 꽃, 아카시아꽃이 화려하게 아름다움을 뽐낸다.

그렇게 숲에서는 주인공이 계속 바뀐다. 자연에 순서에 맞춰 자신의 때가 되면 가장 예쁘고 화려한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니까 순서만 다를 뿐 숲에는 모두가 주인공인 것이다. 물론 나의 주목을 덜 받은 평범한 모양의 참나무꽃들과 5월의 숲에서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애벌레까지. 숲은 모두가 주인공이고 더불어 살아가는 곳이다.

 

 

서로 비교하지 않고 각자의 시간대로 어울려 사는 숲의 생명들을 보면서 인간 사회가 생각났다. 경쟁에서 이겨야 하고, 주목받지 못하면 실패자라고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 그 안에서 불안에 떨고 있는 가련한 우리의 모습이 떠오른다. 우린 언제쯤 자연스러워질까. 자연을 닮아갈까. 어려운 일이다. 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해야겠다. 그것은 숲에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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